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니슈카 대제 (문단 편집) === 과거 === >'''삶이란... 세계란... 어둠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두려워하고 두렵게 하며 고통스럽게 기는 것이다. 빛이 없는 어둠... 그것이 생명이다.''' >---- >- 거대하게 변한 육체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과거를 회상하던 가니슈카 대제의 본체의 절망어린 독백[* 강대한 지배자로 살아왔으되 평생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산 그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독백에서 그 역시도 굉장히 기구한 삶을 살았음이 밝혀진다]]. 친부모에게까지 불신과 미움만 받으며 성장했고 심지어 6살 때 이미 친[[어머니]]에 의해 독살당할 뻔했다. 이유는 어머니가 가니슈카의 동생을 [[편애]]해서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기 때문. 결국 가니슈카는 그 이후 어떻게든 목숨을 건진 후, 살아남기 위해 한밤중에 자고 있는 동생을 칼로 찔러 죽여버렸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왕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그 이후에도 [[황태자]]로서 갖은 암투에서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남은 끝에 자신을 불신하는 부황[* 이 때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묘사를 보면 부하를 시켜 행차 중인 아버지가 타고 있던 [[코끼리]]에게 침을 불어 날뛰게 만들고는 바로 그 부하를 후환을 없애기 위해 죽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어릴적부터과 자신을 암살하려는 [[왕족]]과 [[귀족]]으로부터 살아남으며 이미 얼마나 교활하고 냉혹해져 간 악당으로 타락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반대하는 [[황족]], 귀족을 죽이고 제위에 올랐고, 자국을 노리는 수많은 국가를 상대로 전쟁터를 전전해야만 했던 험난한 과거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일생을 통틀어 평안은 꿈도 꿀 수 없었고 항상 두려움에 시달렸던 탓에, 자신이 두려운 것 이상으로 자신을 두렵게 만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미쳐갔던 것. 전통대로 혼인을 치르고 아들도 얻었음에도 피붙이마저 믿을 수 없는 심리에 전쟁터를 전전하는 처지로 인해 제대로 교류도 나누지 못했다. 그 강박적인 두려움에 의해 용 중의 용이라 불릴 만한 패자로 군림하게 되었으면서도 천하의 제패까지 꿈꾸게 되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을 재패해야 자기가 두려움 없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으리라 믿었던 모양. 대륙의 패자라는 명성 뒤에 숨어있던 게 결국 평생토록 불안지수가 극도로 높은 성향이 생길 수 밖에 없던 불쌍한 사연의 한 사람이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전투에서 승리한 후 오랜만에 궁궐에 돌아와 연회를 갖던 중 부황을 살해하고 제위에 올랐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의 눈이 과거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공포와 의심으로 흐릿해져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자신의 아버지인 가니슈카가 아들인 자신을 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에 사로잡혀 반란을 일으킨걸로 보인다.] 그의 손에 암살당해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 과거 [[다이바(베르세르크)|어느 구루]]가 공물로 바쳤던 베헤리트를 집어들고, 아들을 제물로 바쳐 사도가 되었다. 이후 자신을 죽이려 한 아들의 군사들을 전부 죽여버렸다. 이때 자기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던 것. 현세에서 영향이 큰 자일수록 전생한 후의 힘이 강해진다고 한다는 걸 보면, 아마 대국의 황제였던 탓에 통상의 사도들과 격을 달리하는 힘을 발휘하게 된 듯하다. 그래도 인간이었을 적엔 내심 [[아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하긴 했던 모양이다. 사도의 제물이 되는 조건에는 '''자신의 일부라 여길 정도로 소중한 사람일 것'''[* 욕망의 수호천사(5)편에 보면 '소중한 자, 마음의 일부, 자신의 일부라 할 수 있는 자를 마(魔)에 바치면서 인간성을 버리게 된다'고 구체적으로 나온다.]이라는 조건이 있다. 즉 자신을 죽이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이 제물로 인정된 걸 보면 소중하긴 했다는 걸 증명한 것이다.[* 결혼 자체는 형식적인 이웃나라와의 관계성이었지만 태어난 아들에 대해서는 자신 스스로도 전쟁과 바깥 관리로 인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음을 과거 회상으로 떠올릴 정도로 마음에 걸리는 부분으로 생각했었다. 아들의 배신까지 생각하면 여러모로 아들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사랑과 함께 존재했었던 듯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